고귀함과 신성함의 상징인 줄로만 알았던 색이 사실은 슬픔과 논란, 심지어 반역의 의미까지 품고 있다면 어떨까요? 여기, 바로 그런 두 얼굴을 가진 색이 있습니다. 신들의 옷자락을 물들이고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색, 바이올렛.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죽음의 그림자와 신성모독의 서늘한 이야기가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신화와 전설의 장막을 걷고, 신성과 논란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바이올렛, 그 이중적인 매력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바이올렛 아줌마, 권오훈 신간

천상의 권위, 신과 황제만이 허락된 색

바이올렛이 ‘신들의 색’이라 불리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 압도적인 희소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바이올렛, 특히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라 불린 짙은 보라색 염료는 지중해의 특정 바다 달팽이 수만 마리를 희생해야 겨우 손톱만큼 얻을 수 있는 귀하디귀한 물질이었습니다. 그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을 훌쩍 뛰어넘었지요. 자연히 이 색은 평범한 인간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부와 권력의 정점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유피테르)는 종종 보랏빛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는 그의 신성한 권위와 하늘을 다스리는 자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로마의 황제들 역시 이 색을 독점했습니다. 황제만이 온몸을 보랏빛 토가로 감쌀 수 있었고, 이를 어기는 것은 곧 황제에 대한 도전, 즉 반역으로 간주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처럼 바이올렛은 그 자체로 신적인 권위의 현신이었으며, 눈에 보이는 질서이자 감히 거스를 수 없는 힘의 상징으로 군림했습니다.

비극적 아름다움, 죽음과 애도의 그림자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바이올렛은 화려한 권위의 이면에 깊은 슬픔과 죽음의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지옥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비운의 여신 페르세포네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녀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던 것이 바로 제비꽃(violet)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제비꽃과 보라색은 순결한 존재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애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죽은 아이들의 무덤을 제비꽃으로 덮어주며 그들의 덧없는 젊음과 순수함을 기리는 풍습이 있기도 했습니다. 신성함의 정점에 있던 색이 한순간에 가장 깊은 슬픔의 색으로 변모하는 역설적인 순간입니다.

신성모독과 저항의 빛깔

바이올렛의 이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장 신성한 색이 때로는 가장 모독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니까요. 신약성경에는 로마 병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예수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하며 낡은 보라색 망토를 입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황제의 색,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바이올렛을 통해 예수를 모욕하고 그의 신성을 조롱하려는 극적인 장치였습니다. 가장 고귀한 상징이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에 사용됨으로써, 바이올렛은 신성모독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전복적인 이미지는 바이올렛을 단순한 권위의 상징이 아닌,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도전의 색으로 읽히게도 합니다. 황제만이 허락된 색을 탐하고 몰래 입었던 귀족들의 욕망 속에는 금지된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반항심이 숨어있었고, 조롱의 의미로 입혀진 예수의 보라색 옷은 훗날 순교와 구원의 상징으로 그 의미가 다시 한번 뒤집히게 됩니다. 이처럼 바이올렛은 시대와 문화의 흐름 속에서 신성과 모독, 순종과 저항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그 의미를 확장해왔습니다.

이처럼 바이올렛은 한 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색입니다. 그것은 신들의 위엄과 황제의 권력을 대변하는 가장 높은 곳의 색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죽음과 깊은 애도를 품은 가장 낮은 곳의 색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성에 대한 조롱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는 도발적인 얼굴까지 지니고 있지요. 바이올렛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아마도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양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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